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장기화되어 있다. 러시아가 예측했던 한 달이 아닌, 우크라이나의 저항이 강화되며 안타까운 희생이 계속되고 있다.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여전히 우크라이나를 향한 야욕을 거두지 않아 국제정세는 냉랭하게 흘러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소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 저격병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그것도 패전국이었던 일본의 작가가 쓴 것이다. 어쩌면 이야기의 감정과 서사가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이 소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러시아 저격 소대의 이야기를 다룬다. 대부분의 주인공과 주요 인물들은 여성이다. 전쟁 소재의 대부분이 남성 중심인 것을 고려하면, 이는 신선하고 흥미로운 설정이다. 이 소설은 자연스럽게 여성 서사를 다루며, 전쟁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해 탐구한다.
줄거리는 전형적이다. 전쟁 중 독일군으로부터 가족과 이웃을 잃은 소녀 세라피마가 저격병이 되어 전쟁에 참여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야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초반 세라피마의 훈련과 두 번의 큰 전투,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로 구성된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여성이 적극적으로 전투에 참여한 곳이 러시아였다. 남성 군인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훈련을 받고 작전까지 수행했다. 비율이 러시아 여성의 전쟁 참여가 비교적 압도적이었다고 한다.
소설은 전쟁 상황 속에서 어린 소녀들과 적군과 아군 구분 없이 펼쳐지는 참상을 통해 전쟁의 비극을 그리며, 생명의 의미와 전쟁 속 '여성'의 의미에 대해 고찰한다.
"전쟁은 여성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소설 속 한 구절이다. 정말 전쟁은 그렇다. 전쟁은 굳건한 얼굴로 무수히 많은 영웅담과 장렬한 비극만을 남긴다. 남성이 주체된 형태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도 있다. 전쟁속 여성의 이야기가 드러나기 시작하면, 적과 아군이라는 개념은 상관없이 저열하고 무의미한 폭력의 사실이 남는다. 그 역시 남성주도의 행위. 그런 점에서 전쟁에서 여성이 당한 비극적 상황은 단순히 기존 서사 속 배경으로만 소비될 뿐이었다.
그래서 소설은 오히려 남성들과 함께 싸우며 희생한 그녀들의 이야기는 감춰질것이 아닌 드러나 인정받아야할 가치라 주장한다.
그런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인물 설정에서는 묘한 부분이 있다. 일본 작가가 쓴 소설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서브컬처적인 설정(군대와 소녀, 소녀간의 백합 등)들이 상당히 등장한다. 이런 것들이 은근히 '모에'를 느끼게 한다. 애니화가 된다면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이런 설정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을 기존의 형태로 소비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든다.
잘 쓰여진 작품이다. 독소 전쟁 당시의 역사적 배경이 인물들의 서사에 맞춰 적절히 요약되어 있다. 군사 지식도 전문적이어서 이야기에 실감을 불어 넣는다.